함안군 군북면 오곡리 -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곳이고, 나의 특성상 지명이나 인명을 기억하는 습관이 없던 바인데도,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곳, 오곡리......


12월 말일 경,
덕천동에서 바라본 pda에서는
"대저평강 -> 함안군북 " 이라고 쓰인 콜이 10 분이 지나도록 함께 동행할 대리운전기사를 찾지 못해서 외롭게 둥둥 떠다녔습니다.

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는데... 호기심과 돈 욕심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콜을 잡고 택시를 탔습니다.
도착을 해서 손님과 만나서 출발을 하니
손님 왈..
"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어떠냐.."
이런 말을 불쑥 꺼내십니다.

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습니다.

" 마누라도 어디가서 없고, 집안에 화초들도 많이 키우니, 술 한 잔 더 하고 푹 쉬었가 가시라.."
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 말에

" 아닙니다. 저는 빨리 이 곳으로 돌아와야합니다."
이렇게 대답했는데..
그 양반 나를 빤히..쳐다보더라능....


왜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는지도 몰랐습니다.

하여간,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군북IC 에 도착해서 새 길로 접어들기전에 손에 들고 다니는 PDA에 심어놓은 네비게이션을 켜고 길을 따라 갔습니다.

나는 정말로, 기껏해야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함안군 군북IC 에서 많이 들어가봐야 1킬로미터 쯤 들어갈 줄 알았습니다.
그러나, 새벽 4시의 어두운 논밭길을 가도 가도 끝이 없는듯이 계속 고..고...
내 얼굴은 점점 사색이 되어갔습니다.

그도 그럴 것이,
이미 10킬로미터 이상을 군분IC로부터 멀어지고 있었으니...

손 - " 산길 논길 참 좋지요? 조용하고 한가롭고 ..
            공기는 더 좋아요."
나 - " .........................."


손 - " 조금만 더 가면 되요..한 6킬로쯤 가면 되는데..
            길이 끝나는 곳에 호수가 있고.."
나 - " ..........!!! "


손 - " 호숫가 근처까지 올라가면 정말 못 내려오니까..
             산자락 아래에서 내가 몰고 가리다..'
나 - " ......................ㅠㅠ..."



정확히, 군북IC에서 14,5킬로미터 되는 지점에서 나를 내려두고, 그 아저씨 바람처럼 산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.
아......어디서 개 짖는 소리...부터 나를 반기고....어두운 산골마을에는 검은색 뿐이었습니다.

수십년동안  처음 들어본 말.....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도로... 이런 길이 있다니..정말 그런 곳에 내가 새벽 4시에 홀로 남겨지다니...
앞이 캄캄했습니다. 네비게이션을 들고 있는 왼손이 무척 가련해 보였습니다. 네비게이션이 있으니 길 잃을 걱정이야 없지만, 언제 14,5킬로미터를 걸어가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헌팅을 한단말인가...
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- " 설마 풀어놓고 키우는 건 아니겠지.." 나는 주변에 나뭇가지나 돌을 찾아서 둘러보다가, 겨우 팔뚝만한 썩은 나무 하나늘 들고서 반대편 길로 천천히 힘없이 아주 불쌍하게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.

새벽 4시 50쯤 되었을까요? 50분 정도를 걸어가다가 보니,웬 노인네 한 분이 반대편에서 걸어오십니다. 이런 산골마을에 웬 새벽 4시 산책? 하지만 난 너무 반가워서 가까이 가서 정중하고 싹싹하게 물어보았습니다.
" 어르신, 여기 아침에 버스가 다니나요? 다니면 혹시 몇 시 쯤에 오나요?"
" 아, 버쓰... 아침 일찍 와, 한 8시 반 쯤이면 한 대 오지.."
".......................ㅠㅠ..."

참 그 버스 일찍 다니네요..
폐교가 된 어느 학교 운동장이 사람키 보다 더 높은 곳에 있었는데, 궁금해서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, 갈 길이 바쁜 몸이라 그냥 지나쳐서 계속 발걸음을 지속했습니다.
어둡고 쓸쓸하고 무서운 시골길이었습니다. 무엇보다, 이제야 2킬로쯤 걸어왔나..싶을 정도로 앞으로 갈 길이 멀기만한 느낌에 갈수록 다리에 힘이 없어져 갔습니다.
" 아, 어디 차 한 대 안지나가나... 지나가기만 해봐라, 매달려서라도 타고 가야지..끙.."

하지만, 이런 시골 벽촌의 겨울 새벽에 차가 지나다닐리가 없다는 것은 어린애도 알 수 있는 사실..
정말 의욕이란 의욕은 거의 상실되어 가고 있었습니다.
그런데, 그 때,
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.
그 막다른 도로의 끝에서, 전혀 보지 못했던 차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라이트를 켜고 내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.
나는 원래 길에서 백업용으로 일반 승용차 등등을 세우는 성격이 못됩니다.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.
그러나, 나는 나도 모르게 시골길의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는, 패널티 킥을 막으려고 발악하는 골키퍼처럼 두 팔을 벌려서 휘저으며 차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. 그 건 내가 아니었습니다.
차는 기적처럼 정말 섰습니다. - 아니, 설 수밖에 없었지요. 내가 길을 가로막았는데..ㅋㅋ...하지만 느낌은 기적이었슴.
하얀 탑차였습니다. 이 시골길을 거슬러 내려올 때 전혀 못보았었는데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..

나는, 탑차의 조수석 문을 열고, 허리를 조아리고 갖은 미소와 친절과 싹싹한 친절한 말씨를 섞어가면서
" 군북IC까지만.." 태워 주기를 애원했습니다.
65살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어이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습니다.
" 그런데 어쩌나, 보다시피 조수석에 이렇게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데.."
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... 분명히 그랬습니다.
나는 조수석의 사과 반짝만한 두 개의 궤짝을 내려서 두 손에 들고, 엄청난 괴력으로 조수석에 올라타서는 문까지 잘 닫았습니다
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- 절대로 그 탑차의 운전하시는 노인분이 타라고 허락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.
"이렇게 타면 되죠 머...~~"
나는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타는 것이 당연한 듯이 조수석에서 그 분을 바라보았습니다.
기가막히다는 듯이 그분은 나를 쳐다보더니 너털 웃음을 지으며 차를 출발시켰습니다.
아..
그 때의 그 행복감...

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...
이 탑차는 조금전에 보았던 그 폐교된 학교에서 - 무공해 농산물을 선별해서 - 부산 X마트로 배송 하러 가는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.
오 마이 갓...

나는 안 받겠다고 우기시는 노인분의 차 앞에 5천원을 두고 중간에 내렸습니다.
그 중간이 바로 내 동네 바로 옆 동네였음은 정말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습니다.

이렇게해서 오곡리의 탈출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.
할아버지 감사합니다.

그리고 참고로...그 이후로 함안이라는 곳은 절대로 절대로...오더 글씨 자체를 안 보고 있습니다.